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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낯섦이라는 고향

 

 

“나는 어딘가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 [월든]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장률은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에 와서 꾸었던 가장 인상적인 꿈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기록해 다큐멘터리 <풍경>(2013)을 만들었다. 장률은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꿈에서는 강자 약자가 없어요. 누구나 평등해요. 부자라고 좋은 꿈을 꾸는 것도 아니죠. 꿈은 누구나 평등하지만 어느 구석에는 일상과 연결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꿈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했어요. 영화를 볼 때도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오는 것을 좋아해요."1) 장률의 <후쿠오카>(2020)는 언어의 구속력이 약화된 세계이다. 언어의 구속력이 약해진 세계에는 다른 무수한 계기들이 뛰어들 틈이 열려 있다. 장률의 말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오는” 자리다. 감독 스스로 그러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장률은 <후쿠오카>를 통해 일말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그 성취를 가능케 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주인공인 세 사람(소담, 해효, 제문)의 만남이 모국어의 지배력이 약화된 자리에서 이뤄진다는 물리적인 조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언어를 떠나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담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그 성취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과장하자면 장률의 카메라는 소담처럼 보고,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행을 제안한 자이면서, 여행을 주도하는 소담(박소담)이라는 인물은 초인이거나 귀신처럼 보인다. 그녀는 우리처럼 말을 하지만 언어를 떠나 있거나, 언어보다 먼저 있다. 소담은 타국 한복판에서 누구와 만나도 한국어로 소통한다. 상대방이 중국어를 하든, 일본어를 하든, 침묵하든 자신의 모국어로 말을 건네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이 그녀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고, 그녀 또한 타자의 각기 다른 언어들을 알아듣는다. 소담의 발길, 눈길이 닿는 자리에는 언어의 분절이 만들어 낸 상처가 희미하다. 그녀와 동행하는 해효(권해효)와 제문(윤제문)은 28년 전, 대학 시절에 ‘순이’라는 여자를 두고 다투다 서로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긴 세월이 무상하게도 어제 갈등을 빚은 사람들처럼 마음에 앙금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 해효와 제문마저도 소담과 있을 땐 긴장을 내려놓는다. 두 사람은 소담과 동행하며 목격한 낯선 이미지들 앞에서 자신들이 발 딛고 선 땅이 꿈의 자리인지, 일상의 자리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이내 꿈과 일상의 경계면에서 서로 조금씩 섞여간다. ‘순이’라는 과거의 그림자에서 ‘소담’이라는 낯선 세계로 나아간다.

 

장률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걸어온 관객이라면, 그의 카메라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활동 초기에 재중조선인으로서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 세계 속 사람들은 고통이 만성화되어 타자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감각까지도 남김없이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장률의 카메라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았을 뿐, 그들에게 다른 계기를 부여하려 하지는 않았다. 감독 자신도 그 감옥을 빠져나가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률은 이제 카메라를 다르게 움직여보려 한다. 오늘날의 장률은 “어딘가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카메라를 움직여, 객석의 관객들과 스크린 간의 경계를 지워보려 하고 있다. 그 증거가 <후쿠오카>의 도처에 보인다. <후쿠오카>에는 장률보다 앞서 모던 시네마의 길을 걸었던 이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후쿠오카>에는 홍상수의 영화가 보인다. 인형 하나를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이 연결될 땐 브뉴엘의 흔적이 느껴지고, 주인공들이 촛불 하나를 무대 삼아 즉흥연기를 이어가는 씬에선 카사베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장률은 <후쿠오카>를 통해 모던 시네마라는 영토 안에서 자기 영화가 거처로 삼을만한 곳이 어디쯤인지 찾아 헤매고 있다. 한 작가가 자신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관객이 볼 수 있게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장률은 이제 그 열림 속에서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나는 장률의 <후쿠오카>에 나오는 유령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결여를 짊어진 채 영화관을 드나드는 관객들의 형상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장률이 자신의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을 본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적 존재로 여긴다고 느꼈다. 트뤼포의 말처럼 “씨네필은 아픈 사람들(film lovers are sick people)”이다. 현실의 땅에 발이 잘 붙지 않아 세상을 유령처럼 떠돌다 객석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게 된 사람들이다. 장률은 그러한 관객들의 모습에서 출생과 성장의 근거지(중국)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의 근거지(한국)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겨난 관객들과의 연대 의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작가 장률은 꿈을 닮은 이미지로 한걸음, 한걸음 크게 내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률은 낯선 꿈의 세계를 “강자 약자가 없”고 "누구나 평등"한 모든 이들의 고향이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장률에게 있어 영화 만들기란, 디아스포라들이 머물 작은 고향을 조금씩 지어가는 일일는지도 모르겠다.

1) <장률 감독이 물었다 "당신의 꿈 속 풍경은?"(인터뷰)>, 스타뉴스

https://www.starnewskorea.com/stview.php?no=2013101115555259102

필자 소개

성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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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다시 보기
 
 
  다시 보기 1.
  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한 편씩 단편영화를 연출했는데, 2016년 여름 <시험 후>라는 단편 극영화를 연출한 후엔 병든 닭 같은 얼굴로 다시는 영화 연출을 하지 않겠다며 “이 영화가 내 유작”이라고 반 농담 삼아 떠들고 다녔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었던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험 후>의 촬영을 끝내고 편집실에 상주하던 무렵 부산독립영화협회가 발간하는 부산독립영화에 대한 비평집인 『인디크리틱』이 부산의 젊은 여성 영화감독을 모아 대담을 진행했다. 몇 해 전부터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여성 감독들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페미니즘이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의 여성감독이 그 자리에 참석했고, ‘여성감독’으로 호명되는 것에 대한 의견이나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성’이나 ‘지역’이라는 범주에는 영화제작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왜 여성감독들의 차기작을 보는 것이 더 어려운지, 왜 유능한 영화제작 인력들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지와 같은 문제의식에 모두가 공감했다. 질문은 이 자리에 모인 부산의 여성감독들은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 그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나는 “내가 지금 편집 중인 영화가 내 유작일 것이며, 앞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오랜 기간 준비해 다수의 인원과 고가의 장비를 동원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직업 영화감독이 될 수 없고 되고 싶지도 않으며, 생활에 필요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나에게 허락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내 대답에 누군가 “비싼 취미생활이 되겠다”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고 누군가는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이 되어 그런 방식으로는 영화제작의 책임감이 떨어지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나는 우물거리고 말았다.
 
  ​다시 보기 2.
 『M 다시보기』의 발행인 김준희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무렵이었다. 김준희 씨에 대해선 영화의 전당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 제작한 단편 <여름내>의 연출자이며 경남 마산을 기반으로 경남 지역 영화들을 조명하는 무학산영화제의 기획자이기도 하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었다. 무학산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는 SNS를 통해 알게 됐는데, 부산의 독립문학 잡지 『비릿』의 편집진과 부산독립영화협회의 운영위원 활동을 하며 지역 문화의 개념과 범주, 중앙과 주변에 대한 고민이 꾸준한 관심사였던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특히 나는 진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진해를 배경으로 단편영화를 연출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마창진’을 중심으로 영화제가 기획되었다는 사실에 특별한 관심을 느낄 수밖에 없기도 했다.
 김준희 씨는 자신을 포함해서 나와 다른 작가 한 사람을 구성원으로 한 공동 영상 작업을 제안했다. 김준희 씨가 나에게 작업을 제안하게 된 것도 내가 진해에서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과 영화의 전당 영화제작 워크숍이라는 공통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영화의 전당이 학교 바깥에서 영화를 공부하거나 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느슨하지만 강력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부산권의 거의 유일한 제도권 바깥의 대안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2년 만의 영상 작업이었다.
 2년 전 나는 ‘향신회’라는 부산지역 현대음악 작곡가 협회가 기획한 현대음악과 실험영화의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김정권 작곡가의 곡에 맞추어 십여 분 길이의 푸티지 작업을 했고 완성된 영상은 부산예술회관 공연장에서 1회 상영되었다. 나는 오선지에 음표를 기입하는 것과 디지털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타임라인 위에 클립을 올리는 것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했고, 음표를 쇼트에 대응해 영화로 음악을 받아 쓰는 것을 이 작업의 형식적 구성으로 삼았다. 영화 속 장면은 곡의 낭만적 서정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중에서 선택했고, 장면들을 동작이나 조형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어붙여 ‘다시 쓰기’의 시도를 포함할 수 있기를 바랐다. 비록 부족한 레퍼런스와 장면 선택의 빈약한 논리 때문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한 편의 완결된 영상을 만들고 그것을 다수의 관객 앞에서 상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나름대로 무척 뜻깊은 경험이었다.
 작업 기간에 나는 온라인 슈퍼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푸티지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전부터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비롯해 기존의 영상을 재발견하고 다른 관점에서 재맥락화하는 방식의 작업에 대한 오래된 관심에서 비롯되기도 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당시 내 시간과 경제적 사정, 육체적 에너지가 허락된 범위 안에서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의 작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특별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바랐던 대로 직업 활동과 창작 활동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다시 보기 3.
  김준희 씨에게서 작업을 제안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이 기획은 직업 생활과 영상 작업을 병행하는 두 번째 도전이 되었다. 김준희 씨와 나, 그리고 고은 작가 세 사람은 ‘사랑’이라는 주제만을 교집합으로 서로의 작업에 개입하지 않고 각자 작업한 것을 느슨하게 엮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상영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나는 기존의 영화를 재활용하는 작업을 선택했다. 다만, 지난 작업과 같은 실수를 피하고자 주어진 기간 안에 작업이 가능한 수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제를 고민하고 선택했다. 상황은 절망적일 정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일터에서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지 못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무분별하게 수락한 다른 일들까지 쌓여만 갔다. 결국 나는 약속했던 첫 번째 상영 전 가까스로 첫 편집본을 제출한 뒤 일을 그만두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나는 실패한 셈이었다.
 세 작품은 공간 산마에서 5일간, 의식주 아카이브에서 하루의 상영을 거친 후 인디포럼과 마테리알이 공동으로 기획한 “독립영화하다” 기획전의 상영작 중 하나로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루 동안 상영되었다. 상영과 상영 사이에 나는 조금씩 작업을 수정했다. “독립영화하다” 기획전에서 우리의 작업은 ‘자주 단편’이라는 이름의 섹션에 포함되어 상영되었고, 상영 후에는 김준희 씨를 비롯해 대전의 청년 영상 창작자 커뮤니티 INK의 배은열 씨, 마테리알 편집동인 금동현 씨가 참석하는 대담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상영일과 겹친 아르바이트 일정 때문에 상영에도 대담에도 참석할 수 없었지만, 대신 이들이 제안한 ‘자주영화’라는 개념과 상영 기획에 대한 글1)을 찾아 읽어볼 수 있었다.
 ‘자주영화’는 현재 ‘한국 독립영화’를 형성하는 시스템이 실상 자본과 제도에 기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새로운 방식의 영화제작과 미학적 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두 번에 걸쳐 시도(?)하고 실패했던 작업 방식과 그 결과물을 ‘독립영화’라는 범주보다 ‘자주영화’라는 범주 주변에 뒀을 때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제도적 인증과 절차의 문제와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적절히 지적한 “독립영화하다” 기획전의 기획자 박동수 평론가의 글2)은 내가 했던 작업과 관련해 내가 겪었던 기묘한 기억 하나를 더 상기시켰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창작자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창작준비지원금’ 제도는 ‘예술 활동 증명’ 혹은 ‘예술인 증명’이라 불리는 다소 기괴한 절차를 요구하는데, ‘향신회’와의 협업 후 마침 예술인 증명 유효기간이 끝나갈 시점이었던 나는 나의 ‘예술 활동’을 증명하는 근거로 ‘향신회’ 프로젝트 작업을 제출했다. 아마 자신이 ‘예술인’으로서 ‘예술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제출하는 수많은 사람에 비해 그들의 서류를 검토할 인력이 훨씬 더 부족하기 때문일 텐데, 내가 ‘예술인’인지 아닌지, 내가 했던 작업이 ‘예술 활동’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는 거의 석 달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예술인’이란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 ‘부적합’이라는 문구 외에 특별한 사유를 알 수 없었던 나는 내가 ‘예술인’이라는 사실을 인증받기 위해 보충해야 할 서류가 무엇인지 재단에 문의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영상이 상영된 곳이 ‘극장’이 아니라 ‘공연장’이고 일회성 상영에 그쳤기 때문에 영화감독의 창작 활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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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희 씨로부터 『M 다시보기 3호』의 원고 작성을 제안받았을 때, 내가 처음 떠올린 주제는 2022년의 독립영화 중에서 조금 더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제를 선택한 것은 원고 제안을 받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독립영화제 사이에 내가 했던 활동들과 관련이 있는 글감이어서 비교적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 준비와 영상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내가 처음 떠올렸던 기획에서 점점 흥미를 잃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가져야 했다.
 몇 해 전 부산의 여성감독으로 호명되어 나누었던 대화에서 글을 출발하게 된 것은 그때 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글을 구상하는 동안 내가 만든 영상이 새로운 위치로 옮겨가는 것을 보고 글의 방향 역시 그때 내가 왜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당시 내가 했던 말은 결국 나는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때 그 대화의 자리에 영화감독의 자격으로 초대된 것이었고 그 사실이 내 말과 생각에 이물감을 남겼기 때문에 이어지는 말들에 우물거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나는 많은 인력과 자본을 요구하는 영화제작 시스템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영화제 상영을 통해 비로소 인증되는 ‘영화’라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나는 이제 이 문제를 창작의 태도나 직업윤리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대신 제도와 시스템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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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K 배은열의 마테리알 기고문 https://ma-te-ri-al.online/archive/
2)영화평론가 박동수 블로그 https://blog.naver.com/dsp9596/222949463892 (접속일: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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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imeo.com/873376581?share=cop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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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imeo.com/873379115?share=copy
​<일과 영화>
 
 
필자 소개
김나영.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 San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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