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
사람 발길이 끊긴 남해 빈집에는 여전히 누군가 살고 있다. 벽을 뚫고 자라는 고사리, 마당을 무성하게 채운 풀, 버려진 감나무나 유자나무 등이다. 그렇다면, 빈집을 가득 메운 생명들은 누구의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 이 빈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시골 마을 빈집에서 공존을 상상하다’, 2025.1.15. 경남도민일보)
전시 <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는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가치를 상실한 빈집에 주목하고, 빈집을 둘러싼 커머닝의 가능성을 살핀다. 주인없는 유자나무, 유자훔치기, 빈집의 새로운 주인찾기, 진(zine)만들기 등을 통해 이들은 우리가 생동하는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와 빈집의 위치를 재감각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가 흐려지고 비인간존재들이 가시화되며, 인간과 자연은 이미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음을 발견한다.
1부에서는 202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주인없는 유자나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한다. 프로젝트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빈집에 방치된 유자나무에 열린 유자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여기서 집과 나무는 전통적인 시장원리에 의해 주인에게 귀속된 사유재산이다. ‘빈집’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쉽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느끼고, 해결해야할 사회적 문제로 빈집을 인식한다. 남해의 유자나무는 시장경쟁력을 잃고 ‘대학나무’라는 명성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이들은 유자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빈집’이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를 걷어내고, 시장 바깥에서 새로운 가치 발견하기를 시도한다.
<유자 훔치기>는 앞선 <주인없는 유자나무>에서 감행하지 못한 유자 서리를 제안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2월은 기온이 오르고 땅이 녹으며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새로운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밭 전체를 깊이 뒤집는다. 이 때까지 밭에 남아있는 것들은 인간이 아닌 땅으로 귀속된다. 11월 유자가 노랗게 익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존재감을 뽐냈다면, 2월 유자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땅으로 귀속될 준비를 한다. 이 시점의 유자와 빈집은 결국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적 태도를 공유한다. <유자 훔치기>는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유자의 위치성에 주목하며, 순리에 따르는 대자연의 법칙, 시장 가치의 생성과 소멸 사이의 기묘한 순간을 포착한다.
2부에서는 빈집을 둘러싼 기묘한 공존 상태를 진(zine)이라는 독립출판물의 형태로 확장한다. 진(zine)이란 잡지를 뜻하는 매거진(magazine)에서 ‘maga’를 뺀, 내용과 형식이 극도로 자유로운 출판물 형태의 창작물이다. 2024년 12월 16-17일 1박 2일동안 열린 진캠프의 참가자들은 남해군 남면 무지개마을의 빈집에 방문해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나타나 빈집을 테라포밍하는 비인간존재들에 대해 탐구했다. 전시에서는 진캠프에서 만들어진 9개의 진(zine)을 소개하고, 관람객 누구나 자기만의 진(zine)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전시 제목 <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는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노래 ‘평범한 사람’의 가장 마지막 가사를 그대로 차용했다.
카카카친구들
@cacacafriends
**위 글은 전시 <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의 서문입니다
어젯밤 거나한 술자리의 안주 냄새와 파운데이션과 비비의 어설픈 모방, 블랙 미러의 굉음, 손잡이의 모호한 점유. 편리함을 담보로 설계된 도시의 출근길 위에서 Q는 걸음을 재촉한다. 매번 스스로 배팅하는 시간 도박에서 10분 일찍 일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한다. "작가들에게 왜 우리가 작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직장인이 퇴근하고 쉴 때 작가들은 똑같이 일하고 작업을 하기 때문이에요." 계속 따라다니는 이 유령은 언제 떨쳐 낼 수 있을까. 천국의 계단 덕분에 너무 커져 버린 바지를 치켜올리며 종종걸음으로 무사히 세이프. 책상 위에 일곱 시와 네 시 방향으로 팔꿈치를 올려놓는다. 어제의 약속이었던 서류 앞에, 빨려 들어갈 듯한 목과 어깨를 제물로 바친다.
그가 잊고 살아가는 몸의 감각들이 있다. 매월 초면 밀려오는 카드 값 앞에서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넘기나 싶은 식은땀과 주변의 소음과 같은 인간관계로 수축된 그의 몸짓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적당히 얼굴에 굵은 선을 그으며 웃는다. 나 역시 예측 가능한 기계 장치가 되어 버린 걸까. 남들과 비슷한 네모난 경기장에서 그의 스포츠는 한계를 넘어서는 뜨거움이 아닌 실리를 위한 움직임으로 귀결된다. Q는 생각했다. 굽어진 등, 적당한 각도의 무릎, 푹신하고 부드러운 마찰에만 익숙한 발바닥. 때때로 중력을 감각하는 허리까지. 잃어버린 근육의 기억들. 문득 그는 다리를 매만지며 그것이 아직 남아 있는지 궁금한 듯 눌러본다. Q는 떠올렸다. 이득 될 게 없을 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짙고 눈부시게 솟아오를 때’가 지금이라고.
정혜정은 이번 전시 《JUMP AND JUMP》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의 원초적 움직임을 재발견하고 계승하는 과정을 이미지화한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 몸의 감각을 깨우는 점프(Jump)를 통해 일상의 관성을 넘어서는 생존 전략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수치화되고 고정된 몸을 벗어나 늘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변적 존재로 스스로를 다루는 그의 작업은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僕のヒーローアカデミア)>에 영향을 받아 객체화되고 퇴화된 몸을 다시 활성화한다. 만화라는 원천이 가진 정지된 움직임의 표현 방식을 선택했지만, 역설적으로 순간의 강도와 속도를 강조하며 필사적인 움직임의 포착함과 동시에 주체적 경험의 영역으로의 회귀를 요구한다.
성장만화는 다 큰 어른이 봐야 감동이 있다. 아마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연속이 곧 생존방식이었던 Q에게 미도리야*의 뜀박질은 지금까지 미뤄온 진실된 나에게로의 움직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퇴근길에 발뒤꿈치가 유난히 간질거린다. 자세히 보니 살짝 공중에 들려있는 듯하다. 오늘따라 Q는 조금 다른 걸음으로 걷는다.
김도플 Doppel Kim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僕のヒーローアカデミア)의 주인공
참고자료_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_시즌1_4화_00:09:20 - 00:09:32
*위 글은 스페이스 위버멘쉬의 4th STARTER PACK PROJECT, 정혜정 개인전 ≪ JUMP AND JUMP ≫ 서문입니다
- 2025. 3. 29.(Sat.) - 2025. 4. 12.(Sat.)
- 부산광역시 사하구 윤공단로 75번길 19
- 11a.m. - 7p.m.